부자(富者)와 복자(福者 : 福 있는 者)
기독교는 축복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.
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피조물을 관상용(보시기에 좋았드라.)으로 창조 하셨습니다.
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.
“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[복]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, 땅을 정복하라,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.”(창1:27-28)
“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[복]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.”(창5:2)
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(창12:2)하셨고,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(창22:18, 26:4)고 말씀하셨습니다.
[복]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니 119절에 130 여 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.
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(福音)이라 합니다.
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복을 좋아 합니다.
그런데 복 받기를 좋아하는 한국 교회가 잘못되어 간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커지고 있습니다.
그 이유는 부자(富者)와 복자(福者)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.
즉 돈이 많은 부자가 되면 복 받았다고 합니다.
그러나 성경에는 “부자”와 “복 받은 자”는 엄연히 구별하고 있습니다.
부(富)가 복(福)의 한 요소가 될지언정 부가 곧 복은 아닙니다.
성경에는 부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구절이 많습니다.
“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”(마태19:24)
“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.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.”(눅12:16-21)
또 눅16:19-31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.
적극적으로 부자가 되지 말게 간구하는 말씀도 있습니다.
“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.”(잠30:8-9)
심지어는
“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.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.”(딤전6:9-10)
라고 “부하려 하는 자”, “돈을 사랑함”을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.
한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원하는 복을 원한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돈을 탐하는 맘모니즘(mammonism : 부, 돈, 재산,소유, 재물, 물질을 절대시하거나 그것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나 행위)에 빠져들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혼탁하게 하고 있습니다.